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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NIRVANA
작성자 뮤직인포 (ip:)
  • 작성일 2016-05-23 22: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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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96
평점 0점

NIRVANA '87




19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Alternative)문화의 상징이자 아이콘의 존재였던 밴드


1987년 워싱턴 주애버딘(Aberdeen)에서 가수 겸 기타 연주자인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과 베이시스트 크리스 노보셀릭(Chris Novoselic)이 결성했다.



1967년 2월 20일 미국 서북부 워싱턴 주의 에버딘에서 태어난 커트코베인은
여덟 살 때 부모가 이혼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가 14살이 되던해 생일에 기타를 선물받으면서 악기를 잡게 된 그는
당시 유행하던 메탈보단 뉴웨이브와 하드코어 펑크에 심취하게 된다.
 
 
크리스 노보셀릭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민가정에서 자랐다.
여러밴드를 전전하며 연주했던 그는 동료 뮤지션들과 교류하다 1985년
언더그라운드 하드코어 씬을 매개체로 친해지게 된
크리스 노보셀릭을 에버딘에서 만나게 되고,
결국 이 둘이서 너바나의 모태가 되는 스티프 우디스(Stiff Woodies)를 결성하게 된다.
이 당시 크리스 노보셀릭은 베이스기타를 맡았지만,
커트코베인은 드럼을 치며 기타와 보컬은 세션을 기용했다.
여러 차례의 멤버와 밴드명의 교체시기를 거쳐
1987년 최종적으로 커트 코베인이 기타와 보컬을 맡게 되고,
베이스엔 크리스 노보셀릭, 드럼 연주자는 채드채닝(Chad Channing)으로 결성된
밴드명 너바나(Nirvana)가 탄생되었다.

커트코베인은 주로 펜더(Fender)사의 기타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특히 펜더 재규어, 머스탱, 재그스탕 등을 자주 사용했고,
스트라토캐스터, 텔래캐스터 등도 사용했다.
재그스탕은 펜더사에 직접 주문제작한 제품으로,
머스탱과 재규어 기능을 합친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너바나는 세션 드럼 연주자와 활동했는데
가장 오래 활동한 연주자는 1990년에 가입한 데이브 그롤이다.

지역에서 적지않는 인기를 얻게 된 이들은 1987년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게 되었고,
이 테이프로 시애틀에 근거지를 둔 인디레이블 서브팝(Sub Pop)과 계약이 체결되었다.

1988년 12월 쇼킹 블루의(Shocking Blue)의 커버곡 'Love Buzz'를
첫 싱글로 발매 후, 이듬해 봄부터 데뷔 앨범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나온 1989년 3월 'Bleach' 란 앨범으로




35,000장이라는 많지 않은 판매고와
만족스럽지 않은 리뷰를 얻는데 그쳤지만,
계속된 라이브 연주로 대학가의 인기와 선배 얼터너티브 밴드와 음악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수록곡 중 단조 발라드인 'About a Girl'은 오랫동안 사랑받은 곡이다.

1990년 여름 너바나는 머드허니(Mudhoney)의
댄 피터스(Dan Peters)를 세션으로 기용하고
부치 빅(Butch Vig)을 프로듀서로 맞이해 만든 싱글 'Silver / Dive'를 발매했다.
그리고 스크림(Scream)에서 활동하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
밴드 드러머로 합류하였다.

너바나는 앞서 싱글외로 부치 빅과 데모 테이프 작업을 더 했고,
이를 들어본 메이저 레이블 게펜(Geffen)이 호감을 보여
1991년 4월 287,000달러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991년 여름 유럽의 각종 페스티벌에 참가후
그해 9월 이들의 새앨범인 'Nevermind'(1991)이 발매되었다.



게펜 레이블은 발매당시 100위권 밖 순위의 이들이
아직 인디밴드였던 만큼 대략 10만장 정도 팔릴것이라 예상했었지만,
초판 5만장이 금새 팔리고 품귀현상마저 일어났다.
발매 두달만에 플래티넘 디스크가 되었고, 급기야 1992년 1월 마이클 잭슨의 컴백앨범 'Dangerous'를 끌어내리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랭크되었다.

2월에는 이미 3백만장의 앨범이 판매되었으며 영국에서도 탑10에 올라섰다.

앨범 차트 1위와 더불어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도
싱글차트 탑 10에 오르면서 골드를 기록했고, 4월에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1992년 1월 11일, 미국의 유명 TV쇼인
'새러데이 나잇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 SNL)에 출연했는데
이는 그들의 인기를 증명해주는 역할 이상이였다.



연주를 마치고 크리스 노보셀릭과 데이브 그롤이 서로 입을 맞추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이는 동성애에 대한 연대감을 표현한 것이자 이성애주의와
마초주의의 주류 문화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 것이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한 너바나로 인해 헤비메탈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펑크의 부활을 가져왔고,
이들로 인해 펄 잼(Pearl Jam),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사운드 가든(Sound garden),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등과 묶여 '얼터너티브(Alternative)' 장르가 생겨났고,
새로운 대중음악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리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커트 코베인은 중학교때부터 마리화나를 피워왔을정도로 약물중독자였는데, 
1992년 2월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와 결혼하고
8월에 프랜시스 빈 코베인(Frances Bean Cobain)을 낳았으나



헤로인 남용과 정신적 문제가 악화되어 자살시도와 더불어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러던 중 1993년 9월 3집 'In Utero'가 발매되었다.



이 역시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고,
너바나의 신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작의 멀티 플래티넘 행진을 이어갔다.
1994년 커트 코베인의 정신 건강은 더 악화되었고,
투어도 종종 취소되었으며, 병원에 입원도 하고 마약 재활센터에도 들어갔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이후 1994년 4월 8일 커트코베인은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조사 결과 3일전에 사망하였다는 판결이 나온다.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하였는데,
경찰은 하나밖에 없는 문이 안에서 잠긴 점과, 타인이 지문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점,
유서를 남긴 점 등을 들어 자살이라고 결론을 지었으나,
경찰이 자살에 사용되었다고 밝힌 총에서 커트코베인의 지문까지도 전혀 발견되지 않아
누군가 살해한 후 지문을 전부 닦은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커트코베인의 혈액에서 검출된 헤로인이 치사량의 세배가 될 정도인데도
주변이 매우 깔끔하게 정리되었으며,
그런상태라면 정신이 매우 혼미해 장전을 하거나 목표물을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장도 제기 되었다.
커트 코베인의 시신옆에 있었던 유서에도 필체가 "두 사람의 것"이라는
필적 전문가의 주장도 제기되었다.

커트 코베인을 살해했을 것이라고 지목된 용의자로는
커트 코베인의 부인이었던 코트니 러브 와 소속사가 지목되었는데
코트니 러브는 당시 커트 코베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 위기에 있었는데,
결혼생활 시절 "이혼 할 경우 재산 분할을 하지 않는다"라는 조건이 있어
그 재산을 얻기 위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내연관계를 유지하며
커트코베인을 살해한 후 수사과정을 조작했다는 주장이 있었으며,
코트니 러브 아버지 역시 코트니 러브의 정신적인 부분을 언급하여
 "자신의 딸이 커트코베인을 살해했다"라는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커트 코베인의 시신에서 검출된 헤로인 역시 만성 두통에 시달리던 커트코베인을 위해
코트리 러브가 투약하던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한편, 커트코베인은 작업 당시 우울증을 앓아 음악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자주 하였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소속사가 그와의 계약이 끝날것을 두려워해
커트 코베인을 "불멸의 음악가"로 만들어 수익을 올리기 위해 살해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1994년 11월 MTV 언플러그드 실황을 담은 앨범 MTV Unplugged in New York이 발매되어




미국과 영국에서 발매 첫주에 차트 1위에 오르고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하였으며

라이브 비디오 'Live Tonight! Sold Out!'도 출시되어 플래티넘을 따냈다.
 
그리고 뒤늦게 Bleach가 골드와 플래티넘을 기록하였으며,
또 다른 라이브 앨범인 'From the Muddy Banks of the Wishkah'(1996)

이 앨범 역시 차트 1위로 데뷔해

플래티넘으로 이어지는 공식을 이어갔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 이후, 너바나는 해체 되었고,
드러머 데이브 그롤푸 파이터스(Foo Fighters)결성해
1995년 데뷔 앨범을 발매했고,





베이시스트 크리스 노보셀릭은 3인조 밴드 스위트75(Sweet 75)을 결성해

1997년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다음은 커트 코베인의 유서내용이다.




베테랑급 바보라고 말하는 것 보다
명확하게 고집이 없는 불평꾼의 입에서 나온것이라고 친다면
여기에 써있는 내용이 이해하기 쉬우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최초에 우리들 공동체의 독립심과 용인을 지지하고 있던, 그래 윤리라고 할까..
그것에 접해있던 이래 몇 년에 걸쳐 펑크록 101코스로부터 파생된 모든것에 대해
그리고 만드는 것에 대해 흥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나는 뭘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백스테이지에 있고
쇼를 알리는 표시로 객석의 불이 꺼지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성이 들리기 시작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그것을 사랑하고
관객들이 바치는 애정과 숭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나는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가 정말 존경스럽다.
움직일수 없는 사실은 여러분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 한사람 속이고 싶지 않다.
그런짓을 하는것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공정하지 못하다
내가 생각할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거짓을 통해 마치
내가 100퍼센트 즐기고 있는 것 처럼 행동하며 모두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
나는 때때로 무대를 내려오기 전에 시간 기록기를 한방 먹이고 싶은 감상이 들곤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모든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있는 노력을 다 했다.
정말 노력하고 있다. 믿어주기 바란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나는 내 자신이 그리고 우리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받고 즐거움을 제공받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아마도 잃어버린 순간에 그것의 고마움을 깨닫는 소위 나르시스트 타입인가보다.
너무 신경이 에민하다.
어린시절에 가지고 있던 정열을 다시 찾기에는 조금은 둔감해 질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에 치뤘던 3번의 투어 동안에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너바나의 팬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 모두를 예전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안에있는 부담과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선의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단지 단순히 지나치게 사랑했으므로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버렸다.
한심하고 보잘것 없고 연약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물고기자리의 되게 재수없는 녀석이 된거다. 왜 아무생각없이 즐기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나도 더이상 모르겠다.
나에게는 야심과 배려가 넘치는 여신같은 아내와 너무나도 어린시절의 나를 닮은 딸이 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프랜시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에게나 키스를 한다.
왜냐한면 누구나 선하고 그녀에게 위험을 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떻게 손 쓸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나는 프랜시스가 나처럼 한심하고 자기 파괴적인,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만을 생각하는 인간이 된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즐거웠다.
매우 좋은 인생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크게 감사하고 있다.
일곱살 이후, 인간이라고 하는 것 전부에 대해 증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너무도 쉽게 타협하고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감! 분명 그것은 단지 내가 너무나도 모두를 사랑하고 미안한 기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몇년간 편지를 보내주고 염려해주었던 모든이들에게 타서 진무른, 토할것 같은 뱃속 바닥에서부터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는 손 쓸 방법이 없을정도로고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 아기다.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그리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점점소멸되는것보다 한꺼번에 타버리는 쪽이 훨씬 좋다는 것을
 
프랜시스 그리고 커트니,
나의 모든것을 그대들에게 바친다.
꼐속 전진하길 커트니, 프랜시스에게 건배.
내가 없다면 더욱 온화하고 행복해질 그녀의 인생을 위해..





Nevermind 앨범커버의 아이가 이렇게 훌쩍 커버렸다.

 
 
 
그리고 그의 딸 프랜시스 빈 코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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